계절은 쉬 바뀌어 찬바람이 불 때 쯤 기나긴 겨울방학이 두려운 때가 찾아왔다. 어느 날, 한 학부모님께서 방학이 오는 게 너무 힘들다며 하소연하셨다. 추운 날씨 탓에 밖에서 노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이렇게 긴 겨울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질문은 매년 한두 번씩 한숨 섞인 푸념과 함께 듣게 된다.
행동 치료사의 입장에서 보면 방학은 큰 고비다. 아이들의 수면, 식사, 미디어 노출 시간이 불규칙적으로 흐트러지고, 이 기간 동안 아이들은 다양한 환경적 강화를 통해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부모와의 실랑이에서도 줄곧 승리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 결국 부모와 아동 모두 *‘행동의 함정(Behavior Trap)’에 빠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 학부모님께 하루 중 일정한 시간을 정해 아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만들 것을 권했다. 하루 1~2시간이라도 반복적으로 하는 활동을 정해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실천하는 것은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실천을 위한 원칙을 지킨다면 방학을 보다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
첫째, 가장 방해받지 않을 시간을 정하고 알람을 맞춰두자. 정해진 시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미루게 되고, 결국 매년 같은 후회와 고민을 반복하게 된다.
둘째, 부모가 아이와 ‘해야 하는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활동을 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카페 가기, 집안일 돕기, 놀이하기, 산책하기, 마트 가기, 등산 등이 있다. 과거 치료실에서 10명 남짓한 아이들과 매주 토요일마다 등산을 한 적이 있다. 어른 걸음으로 20분 정도 오르면 운동기구와 약수터가 있는 작은 산이었다. 우리는 늘 약수터 근처 바위에 앉아 각자 가져온 음료수를 마시며 쉬다가 내려오곤 했다. 매주 같은 산을 오르다 보니 처음에는 느리고 투덜대던 아이들도 점차 빠르게 오르내리게 되었고, 결국 모두가 즐기는 활동이 되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선호 활동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이런 것은 어떠한가? 매일 걸어서 집 주변을 걷는 것이다. 이런 산책을 위해 옷 갈아입기부터 시작하여 신발 신기, 기다리기, 부모 옆에서 안전하게 걷기, 간판 읽기 등 다양한 사회적 행동을 익히게 될 것이다.
셋째, 부모와의 실랑이를 시작할 경우, 끝까지 밀어붙이기 어려울 것 같다면 빠르게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 또는 처음부터 아동이 원하는 바를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하도록 지도하며, 중재안을 찾는 것도 바람직하다. 부모가 아이와의 실랑이 끝에 결국 지쳐 포기해 버리거나, 반대로 아이를 과도하게 힘들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특히, 아이의 의도와 상반되는 요구나 능력치를 초과하는 지시(아이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 하더라도 동기가 부족한 경우 포함)는 과도한 반응 노력을 요구하게 된다. 이는 오히려 텐트럼(격한 감정 폭발)을 유발하거나, 부모와의 관계마저 무너뜨릴 수도 있다.
항상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치료사로 25년을 일했지만, 단언컨대 똑같은 케이스는 한 번도 없었다. 결국, 내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은 부모 스스로의 몫이다. 하지만 아이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노력만큼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행동의 함정(Behavior Trap)
강력하여 의미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지속되는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내는 강화 유관으로 함정에 빠지는 데 필요한 반응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한번 함정에 빠지면 나오기 어렵다(응용행동분석(하). 시그마프레스. p412~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