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처하는 어휘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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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슈퍼비전 시간에 언어 선생님께 이런 질문을 받았다. “어머님들이 요즘 사라지는 단어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꼭 가르쳐야 할까요?” 선생님은 이 질문을 받은 후, “어머님들께 어떻게 안내하면 좋을까요?”라며 내게 물었다. 예를 들어, ‘문구점’이라는 단어보다는 ‘다○소’가 아이들에게 더 익숙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소는 작은 백화점과도 같아서 신선식품(야채, 과일, 정육, 생선 등)을 제외하면 웬만한 물건은 모두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치료 현장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가르칠 어휘를 선정할 때 무엇을 우선 고려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어휘를 선정할 때는 교사가 지도하고자 하는 단어 위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에 나는 언어치료를 그만두었다. 2024년 10월, 대법원 판결로 인해 언어치료사의 길을 위해 달려온 2년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하지만 그 2년은 나에게 언어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고민할 기회를 주었다. 특히 언어 행동에서 택트를 지도할 때, 나는 기존 방식대로 카테고리를 정하고 그에 맞는 어휘를 정리하여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과일, 동물, 생활용품, 가전제품, 탈것 등 수많은 카테고리에 따른 하위 어휘들이 있었다. 그런데 언어치료를 조금 배운 후부터 나는 더 실용적인 어휘, 아이들의 실제 생활과 밀접한 어휘와 문장을 선정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좋은 변화였다.

이제 ABA적 사고로 돌아가,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현재의 어휘를 가르치는 데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미래에는 사라질지 몰라도, 현재 사용하고 있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어휘이기 때문이다. 15~20년 전쯤이었을까? 당시에는 사회성이 중요한 화두였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하기, 시장놀이, 은행놀이 등을 통해 아이들이 돈을 계산하고 주문하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 사회성 훈련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금을 사용했기 때문에, 거스름돈을 잘 챙기는 것이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그때도 나는 고민했다. ‘아이들에게 꼭 계산법을 가르쳐야 할까? 만 단위까지 사칙연산을 지도해야 하나? 차라리 계산기를 잘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때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지금 교사들도 하고 있었다. 결국, 아이들이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하는 법을 익혔을 즈음, 키오스크 사용법을 배워야 했고, 어느새 앱 주문과 무인 매장이 보편화되었다. 이제는 거스름돈을 계산할 줄 몰라도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첫 번째 조언은 현재에 충실한 교육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조언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언어적 기술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기술, 감사함을 표현하는 기술, 공감하는 사회적 기술은 어떤 어휘보다도 중요한 능력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 따뜻한 제자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마 지금쯤 그 녀석은 20대 후반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말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몇 가지 문장을 아주 의미 있게 사용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미안해요.” “사랑해요.” “힘내세요.” 때로는 상황에 맞지 않게 말할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때 그 녀석이 참 친절하고 따뜻한 아이였음을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도 매년 연중행사로 1년에 한두번씩 그에게서 “원장님, 힘내세요.”라는 문자가 온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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